1. 혹한의 겨울 속에 찾아온 심양공장의 봄날
2000년 한 해의 정직한 결산 데이터를 뒤로하고 2001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매주, 매월 냉정한 지표를 마주하며 라인의 원칙을 지켜온 시간들이 쌓이자, 심양공장의 생산 라인은 마침내 눈에 띄게 안정화 궤도에 접어들었습니다. 현장의 중국인 작업자들과 중간관리자들의 역량 역시 매일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부총경리인 제가 앞장서서 이끌었다기보다, 현장 스스로가 깨어나 체질을 바꾸기 시작한 결과였습니다.
공장이 몰라보게 달라지자 본사에서도 격려와 관심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부사장님과 사업부장께서 잇달아 공장을 방문하여 현장의 변화를 확인하셨고, 본사의 협력업체 사장님들 역시 심양공장의 선진적인 운영 방식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먼 길을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공장 바로 앞에 위치한 고객사에서 일어났습니다. 평소 품질에 까다롭던 고객사의 부총경리께서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꼭 저희 공장을 방문하셨는데, 심양공장의 철저한 공정 관리 방식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신 후에는 고객사의 한국인 주재원들에게 "심양공장의 운영 방식을 보고 배우라"며 공식적으로 벤치마킹을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그 덕분에 고객사 담당자들이 수시로 라인을 찾아와 공정 노하우를 묻고 가곤 했습니다. 대륙의 혹독한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었지만, 심양공장 만큼은 마치 따뜻한 봄날을 맞이한 듯 활기와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2. 5월의 운동장, 국경과 사명을 넘어 하나가 되던 날
라인이 안정되고 공장에 생기가 돌면서, 현장 직원들과의 유대감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해 5월의 어느 싱그러운 토요일, 저희는 심양의 한 중학교 운동장을 빌려 아주 특별한 운동회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심양공장 직원들뿐만 아니라, 대륙이라는 낯선 환경에 전략적으로 동반 진출하여 함께 고생하던 고객사 식구들, 그리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던 프레스 공장과 도장 공장의 임직원들까지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매일 긴장감이 흐르는 라인에서 벗어나 푸른 운동장 위에서 함께 달리고 땀을 흘리며, 우리는 비로소 국경과 회사의 경계를 넘어 서로를 신뢰하는 하나의 팀임을 온몸으로 느킬 수 있었습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품질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묵묵히 버텨준 이들과 함께 웃고 즐기며 정을 나누었던 그 오월의 하루는, 제게도, 그리고 매일 땀 흘리던 직원들에게도 거친 대륙 생활을 이겨내게 해 준 가장 따뜻하고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3. 실추된 명예의 회복, 그리고 아버지로 돌아가기 위한 결단
공장이 안팎으로 궤도에 오르자, 제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과거의 짐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1999년 본사 근무 시절, 제 책임으로 발생했던 필드 불량 사고는 제 엔지니어 인생에 커다란 낙인이자 극복하기 힘든 트라우마였습니다. 하지만 이곳 심양공장에서 전 직원과 함께 일구어낸 정직한 운영 방식과 우수한 품질 지표를 통해, 본사에서 실추되었던 명예와 신뢰를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2001년에 접어들어 그동안 현장에서 치열하게 부딪히며 정립한 매뉴얼들이 완전히 공장의 시스템으로 고착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생산과 품질 부문 모두가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지 않고 시스템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는 제가 아닌 그 어떤 주재원이 새로 부임하더라도, 심양공장은 흔들림 없이 안정된 생산량과 품질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후임자에게 완벽한 공장을 물려주는 것이 떠나는 관리자의 마지막 책임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무렵, 제 마음속에는 또 다른 중요한 결심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중국 땅에서 공장 재건에 매진하는 동안 어느덧 네 살이 된 아들의 얼굴이 늘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아이가 더 크기 전에, 그동안 채워주지 못했던 아빠의 빈자리를 이제는 곁에서 채워줘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 깊이 밀려왔습니다. 공장이 가장 안정적인 반석 위에 올랐을 때가 바로 미련 없이 떠날 때임을 직감하고, 저는 2001년 7월 말 사직을 결심했습니다.
떠나기 직전인 2001년 7월 말까지의 최종 지표를 집계해 보았습니다. 약 7개월간의 생산량은 총 300,000대였고, 고객 품질불량률은 전년도보다 더 개선된 '200ppm이라는 성적표였습니다. 부총경리가 없어도 현장과 시스템은 스스로 더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데이터가 증명해 준 것입니다. 이 과분한 결실을 마지막 선물로 품은 채, 저는 비로소 가벼운 마음으로 심양공장과의 이별할 수 있었습니다.
以上 / 총10편의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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