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북미 글로벌 조명회사로부터 날아온 제안
2012년 가을, 회사에 북미 글로벌 조명회사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했습니다. LED Driver 내장형 T8 LED 형광등 개발 요청이었습니다. 당시 LED 조명 시장은 급격히 성장하고 있었고, 북미 시장은 이미 기존 형광등을 LED로 교체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들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고객사가 보내온 Spec 문서는 구체적이었습니다. T8 LED 형광등 3종(4FT, 3FT, 2FT) 규격에 맞는 슬림한 내부 공간에 비절연 방식의 LED Driver를 내장하되, cUL 인증과 FCC 인증을 모두 통과해야 했습니다. 전기적 특성, 출력 전압 및 전류 안정성, 그리고 북미 시장의 까다로운 안전 규격까지 충족해야 하는 고난도 프로젝트였습니다.
우리 회사 기술연구소에서는 이미 LED 형광등 개발담당자가 LED 형광등 본체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LED Bar Module이 탑재된 알루미늄 압출 방열판 구조, 2중 압출 불투명 PC 튜브, 그리고 G13 캡 결합 방식까지 형광등의 기구적 설계는 기술연구소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회사는 이 프로젝트에서 제게 특정한 역할을 맡겼습니다. 3종 LED 형광등 규격에 맞는 비절연 타입 LED Driver의 개발진행 및 양산 품질관리 프로젝트 PM이었습니다. 생산과 품질 양쪽을 모두 경험한 제 이력, 특히 SMPS와 전원 회로 분야에서 쌓아온 검증 경험이 이 역할에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LED Driver는 저에게도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원 회로의 본질은 같았습니다. 입력을 받아 안정적인 출력을 만들어내고, 그 신뢰성을 검증하는 프로세스. 그 노하우를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2. LED Driver 개발의뢰서 작성, 그리고 구체적인 규격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한 일은 LED Driver 개발의뢰서를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술연구소의 LED 형광등 개발담당자로부터 3종 형광등의 LED Bar Module 사양을 전달받았고, 북미 고객사가 요구한 전기적 특성을 분석하여 각 규격에 맞는 LED Driver의 입출력 특성을 정의해야 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LED PKG를 많이 적용하는 방식으로 설계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서서히 LED PKG의 적용 개수를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최적화를 진행할 계획이었습니다. 제가 작성한 개발의뢰서에 명시된 사양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2.1 4FT LED Driver 내장형 LED 형광등용 LED Driver의 규격 :
LED Driver의 1) 입력 조건은 AC 120~277V±10%, 2) 출력 조건은 DC 60±6V, 270mA±5%
2.2 3FT LED Driver 내장형 LED 형광등용 LED Driver의 규격 :
LED Driver의 1) 입력 조건은 AC 120~277V±10%, 2) 출력 조건은 DC 60±6V, 220mA±5%
2.3 2FT LED Driver 내장형 LED 형광등용 LED Driver의 규격 :
LED Driver의 1) 입력 조건은 AC 120~277V±10%, 2) 출력 조건은 DC 60±6V, 170mA±5%
모든 규격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조건은 cUL & FCC 인증 규격에 준하고, LED Driver의 효율이 최소 85% 이상이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비절연 방식의 트랜스를 적용하더라도 이 효율을 보장해야만 북미 시장의 에너지 효율 기준을 충족할 수 있었습니다.
3. 중국 Cixi, D사와의 만남
LED Driver 자체를 우리 회사가 직접 개발할 역량은 부족했습니다. 대신 중국 내 협력업체 중 전원 회로 설계 능력을 갖춘 업체를 찾아 개발을 의뢰하고, PM으로서 제가 할 일은 그들이 개발한 제품이 우리가 요구한 Spec을 정확히 충족하는지 검증하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협력사를 물색하던 중, 북미 글로벌 조명고객사의 담당자로부터 한 업체를 소개받았습니다. 절강성 Cixi(慈溪)에 위치한 D사였습니다. D사는 이미 같은 북미 글로벌 조명고객사에 LED Down Light를 공급하고 있는 업체였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북미 시장에 진출해 있었고, cUL과 FCC 인증 경험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2012년 10월, 첫 번째 방문
2012년 10월, 저는 처음으로 Cixi에 있는 D사 공장을 방문했습니다. D사는 관리자를 포함한 3,000명의 규모였고, 플라스틱 Case 사출부터 북미향은 물론 동남아시아 및 아프리카까지도 폭넓은 시장을 가지고 있는 규모를 갖춘 회사였습니다. 무엇보다 자체 기술연구소나 기술팀이 이미 북미 시장의 까다로운 인증 기준을 경험했다는 점이 큰 장점이었습니다.

D사 영업담당자와 기술팀을 만나 프로젝트 개요를 설명했습니다. 제가 작성한 LED Driver 개발의뢰서를 전달하며, 3종 규격별 입출력 사양과 효율 요구사항을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우리 회사 기술연구소에서 개발 중인 LED 형광등의 내부 공간 제약도 함께 공유했습니다. 슬림한 형광등 내부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PCB 크기와 두께에도 제한이 있었습니다.

D사 기술팀은 개발의뢰서를 검토한 후, 비절연 방식의 트랜스를 적용한 독자적인 회로 설계가 가능하다고 답했습니다. 양면 PCB 구조를 기반으로 설계하면 공간 제약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이었습니다.

4. 2012년 11월, 비절연 LED Driver 개발 시작
첫 방문 이후 몇 차례 이메일과 전화로 세부 사항을 조율했고, 2012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비절연 LED Driver 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D사 기술팀은 양면 PCB 구조를 기반으로 회로 설계에 착수했고, 저는 한국 본사에서 주기적으로 진행 상황을 점검했습니다.
단가와 품질 사이의 줄타기
개발 초기 단계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이 벌어진 부분은 '비절연 트랜스' 적용 여부였습니다. 절연 방식의 트랜스를 사용하면 안전성은 높아지지만 단가가 올라갑니다. 반면 비절연 방식은 단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지만, 설계와 검증이 까다롭고 안전성 확보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북미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대신 안전성 확보를 위해 검증 프로세스를 더욱 철저히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효율 85% 이상을 보장하면서도 cUL과 FCC 인증을 통과할 수 있는 설계가 가능하다면, 비절연 방식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판단했습니다.
5. 개발 의뢰는 쉬웠지만,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D사와의 협의를 거쳐 최종 회로 설계 방향이 확정되고, 첫 번째 샘플 제작 일정이 잡혔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개발 의뢰는 쉬웠지만,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라는 것을. D사에서 개발한 LED Driver가 과연 우리가 요구한 까다로운 Spec을 충족하는지, 그리고 장기간 사용 시 신뢰성을 보장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것이 PM인 제게 주어진 핵심 임무였습니다.
국내에는 명확한 선행 사례가 부족했습니다. 저는 오직 과거 SMPS와 전원 회로 품질관리에서 체득한 검증 프로세스를 LED Driver에 맞게 재설계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1차 기능 검사, 2차 가혹 환경 번인 테스트, 3차 최종 특성 검증. 이 세 단계를 통과하지 못한 Driver는 절대 한국 본사로 가져올 수 없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6. 2012년 겨울, 검증 시스템 구축을 위한 준비
2013년 1월 중순이 되었고 개발 초도품이 완료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다시 Cixi의 D사로 날아가 현장에서 직접 검증 시스템을 구축해야 했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 하늘을 바라보며,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시행착오가 발생할 것이고 D사와의 유기적인 협력을 이끌어내 원하는 결과로 LED Driver 개발 프로젝트를 완수하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명확한 선행 사례가 부족한 상황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저는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예측 가능한 모든 리스크를 사전에 차단하고, 북미 고객사가 요구한 Spec을 정확히 충족하는 제품을 만들어내겠다는 각오만큼은 누구보다 확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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