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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 Power Supply 품질관리

[제1편] 1999년의 잔인한 여름. Bond의 배신과 사투, 그리고 중국 심양으로

by The Fixer 2026. 5. 11.

1. 하기 휴가 끝에 터져 나온 전국적인 비명

19997월 말, 전 국민이 휴가를 즐기던 그 평온한 시간이 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악몽의 시작이었습니다. 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관공서와 학교에서 PC 전원을 켜는 순간, 전국 곳곳에서 "!" 하는 소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우리 회사가 대기업에 납품하여 행정전산망(행망)에 보급한 PC들이 전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마비된 것입니다. 품질팀장이었던 저에게 빗발치는 항의 전화는 단순한 불량 보고가 아니라, 제 직업적 생명을 건 시험대와 같았습니다.

 

2. 선의로 내린 작업 지시가 불러온 비극, 본드(Bond)의 함정

원인 분석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발열이 심한 스너버(Snubber) 회로 부품의 이격을 위해 제가 지시했던 '부품 고정용 본드'가 화근이었습니다. 60만 되어도 탄화되는 본드의 특성을 간과한 탓에, 6개월간 서서히 탄화된 본드가 휴가 기간 습기를 빨아들였다가 전원을 켜는 순간 쇼트를 일으킨 것입니다. 저렴한 가격 때문에 선택했던 본드가 수만 대의 PC를 멈춰 세운 거대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본드 사용을 지시했던 제 판단이 얼마나 무거운 결과로 돌아오는지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PC Power Supply 불량 사진자료

3. 30일간의 전국 투어 사투, 11개 조 33명의 구호 작전

전국적인 불량을 수습하기 위해 저는 즉시 사업부장께 보고하고 실행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렌터카 11대와 고객사 파견 인원 11, 우리 회사 직원 11, 그리고 여름방학을 맞은 고등학생 알바 11명을 투입하여 총 11개 조 33명의 '전국 수습팀'을 꾸렸습니다.

 

물량 순환 방식의 도입

수만 대의 물량을 모두 새 제품으로 교체하기엔 회사의 손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저는 고객사 품질담당(임원급)과 협의하여 현장에서 수거한 불량품을 즉시 본사로 보내 신속히 수리한 뒤, 다시 현장 교체 물량으로 투입하는 '물량 순환 방식'을 이끌어냈습니다.

 

전남대학교로 향했던 단 한 건의 긴급 전달

본사에서 전체 상황을 진두지휘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전국 사이트 중 전남대학교에서 대체 물량이 부족하다는 급보가 들어왔습니다. 저는 주저하지 않고 직접 물량을 차에 싣고 광주로 달려갔습니다. 현장에서 전달했던 그 단 한 건의 물량은, 품질 관리자로서 책임감을 끝까지 내려놓지 않겠다는 저의 마지막 의지였습니다.

 

4. 위기를 기회로: 독점 공급권 확보와 뒤바뀐 운명

한 달간의 사투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고객사인 대기업은 위기 상황에서 보여준 우리 회사의 신속하고 책임 있는 대응을 매우 높게 평가했습니다. 결국 당시 함께 납품하던 쟁쟁한 경쟁사 2곳을 배제하고, 우리 회사에 '독점 공급권'을 약속하는 파격적인 보상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는 품질 관리의 실패가 오히려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이 된 역설적인 순간이었습니다.

 

5. 가시방석 같은 자재부 사무실에서의 침묵과 시련

회사의 승리와는 별개로 저의 개인적인 시련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불량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약 3,000만 원의 비용과 클레임에 대한 책임 소재는 온전히 품질부서장이었던 저에게 향했습니다. 저는 보직 해임과 함께 전혀 생소한 분야인 자재부서장으로 좌천되었습니다.

 

가장의 무게로 버틴 시간

낯선 업무에 적응할 겨를도 없이 반복되는 질책을 받으며, 저는 속으로 '내가 알아서 그만두기를 바라는구나'라는 생각에 수없이 괴로워했습니다. 하지만 1998년에 태어난 두 살배기 아이가 눈에 밟혔습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은 사표를 던지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고, 저는 매일 가시방석 같은 자재부 사무실에서 침묵하며 2000년을 맞이했습니다.

 

6. 심양공장 주재원, 명예 회복을 위한 마지막 승부

2000, 전략적 요충지인 중국 심양 공장이 셋업을 마쳤지만 주재원으로 지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생산과 품질 기술을 모두 갖춘 적임자가 절실했던 상황에서 저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회사의 눈치를 보며 자재부 사무실에서 사그라지는 대신, 험지에서 제 실력을 다시 증명하기로 한 것입니다.

저는 자원했고, 결국 중국 심양 공장의 생산과 품질을 총괄하는 부총경리로 발령받았습니다. 실패한 관리자라는 꼬리표를 떼고 오직 품질로만 승부하겠다는 각오로, 저는 영하 30도의 칼바람이 기다리는 심양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제 인생의 진정한 전환점은 바로 그 낯선 땅에서 새로 시작되려 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