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하 30도 혹한 뒤에 찾아온 또 다른 시련, 영상 40도의 대폭염
영하 30도의 혹독한 겨울이 지나면 평화가 찾아올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대륙의 기후는 자비가 없었습니다. 7월에 접어들자 심양은 언제 그랬냐는 듯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공장 내부는 PC Power Supply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열기까지 더해져 체감 온도가 40도를 훌쩍 넘어섰습니다.
당시 임대 공장은 프레스와 도장 공정이 혼재된 오픈형 구조라 에어컨 설치가 불가능했습니다. 대형 선풍기 몇 대에 의지해 공기를 순환시키는 것이 고작이었고, 설비의 열기와 폭염은 작업자들의 숨통을 조여왔습니다. 오후 3시경이면 현장은 사우나처럼 변했고, 지친 작업자들이 열사병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되는 긴박한 상황이 속출했습니다.
2. "품질은 공정에서 만들어진다"
작업자들이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보며 제 머릿속은 복잡해졌습니다. 한국 본사에서 겪었던 뼈아픈 품질 사고의 교훈은 '완벽한 공정'이었지만, 그 공정을 운용하는 주체는 결국 '사람'입니다. 작업자가 지치면 아무리 훌륭한 시스템도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을 과거 다른 회사에서 근무할 때 체득을 했었습니다.
저는 즉시 관리부 소속 한족 관리자인 이세광 직원을 불렀습니다. "지금 당장 심양시내의 얼음과자 공장을 찾아가 위생이 검증된 제품으로 220개를 사오라고 지시했습니다.." 200명의 작업자와 관리자, 주재원 모두가 함께 나눌 수 있는 수량이었습니다. 진정한 리더의 역할은 채찍질이 아니라, 작업자가 최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위생적인 '얼음과자' 하나로 잡은 두 마리 토끼
다음 날부터 현장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저는 가격이 조금 더 비싸더라도 반드시 시내의 규모있고 위생적으로 만들어진 빙과를 공수하게 했습니다. 빙과 220개를 구입한 비용은 할인율이 적용되어 인민폐로 200元(당시, 한국돈으로 35,000원정도)이 들었습니다. 우리공장 근처에도 얼음과자를 만드는 공장이 있었지만, 낙후된 지역에다 값싸고 비위생적인 공정에서 만들기 때문에 이곳에서 만든 빙과를 먹었다가 배탈이나 식중독이 발생하면 생산이나 품질관리상 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오후 3시, 멈춰선 라인과 시작된 변화
오후 3시는 폭염의 절정이자, 단순 반복 작업으로 인해 졸음이 쏟아지는 마의 시간입니다. 저는 전 라인을 멈추게 했습니다. 기존의 10분 휴식 시간을 20분으로 늘리고, 모든 직원에게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빙과를 하나씩 전달했습니다. 작업자들은 물론 중국인 관리자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부총경리가 우리의 고통을 알고 있다", "우리를 소모품이 아닌 동료로 대우한다"는 무언의 신뢰가 현장에 퍼져나갔습니다.

냉소적이었던 눈빛은 생기로 변했습니다. 빙과 하나로 '더위로 인한 열사병'과 '단순 반복작업에 의한 졸음'을 일거에 퇴치하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것입니다. 폭염 속에서도 생산량은 날로 증대했고, 불량률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4. '우리 부총경리'라는 이름과 자발적인 열정
얼음과자로 시작된 배려는, 제철 과일로 이어졌습니다. 매일 오후 3시, 가장 지치는 시간대에 포도, 복숭아, 참외, 수박 등 신선한 과일을 제공했습니다.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직원을 아끼는 마음을 전하자, 현장은 더 큰 보답으로 화답했습니다. 사실 제가 공장의 라인을 투어할때면 잘못을 지적당할까봐 벌벌떠는 일부 작업자와 관리자들도 있었습니다. 어딜가나 눈치만 살살보고 일을 제멋대로 하는 작업자나 관리자가 있습니다. PC Power Supply 제조 및 품질에 대한 전공정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직원들 사이에서 저는 어느덧 '무서운 주재원'이 아닌 '우리 부총경리'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생산의 관리자로든 품질의 관리자로 어느곳에서 일을 하든 저의 모토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이었고 누구도 예외없이 공평하고 공정한 평가를 내렸습니다. 기술적인 데이터와 공정 관리는 기본이지만, 그 데이터를 움직이는 에너지는 바로 작업자의 '자발적인 마음'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얼음과자 하나가 215명 직원의 마음속에 '제대로 한번 만들어보자'는 열정의 불꽃을 지핀 것입니다.
[제4편 예고] 주말 48시간의 대수술 - 인라인(In-Line) 시스템의 완성, 현장의 마음을 얻은 우리는 이제 공장의 하드웨어를 혁신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본사 생산기술팀장이 오랫동안 구상하고 설계해 온 '공정 통폐합'을 실행에 옮길 차례였습니다. 1, 2공정으로 분리된 비효율을 해결하기 위해 주재원들과 생산기술팀이 하나로 뭉쳤습니다. 단 48시간의 주말 동안 이루어진 공장이전 프로젝트, 그 긴박했던 인라인 시스템 완성기를 다음 편에서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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